더 직관적으로, 더 즉각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BTS, 일론 머스크, 오펜하이머, 임영웅, 푸바오와 같은 책들의 공통점은 어떤 책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출판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이미 화제인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보자마자 별다른 설명 없이 어떤 책인지 이해하고 이미 있던 자신의 호감도에 따라 책의 호감도를 결정합니다. 이미 인지도가 있던 것을 책으로 만들면 이렇게 빠르게 독자의 시선을 끄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직관적이고, 즉각적이면서, 효율적이죠.
(이제야 보이는) 마케팅의 순기능
상품이나 미디어의 발전이 폭발적으로 일어났을 때는 마케팅 없이도 상품 자체에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발전이 멈추고 비슷한 상품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마케팅이 필요해졌습니다. 마케팅은 콘텐츠가 포화상태일 때 진가를 발휘합니다. 차별화를 위해서 타겟을 더 세분화하고, 미세한 포지셔닝으로 틈을 파고듭니다. 블루 오션도 노리고요.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입니다.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면서 같은 것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새롭게 표현해낼 수 있는 창의력이 마케팅에서 가장 강조되는 역량이지요. 덕분에 우리는 숨어있는 것들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것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마케팅은 쏟아지는 콘텐츠들을 고르는 데 지친 독자들을 열심히 설득해 다양한 책으로 이끌었습니다.
다양성의 삭제, 독립성의 약화
이제 제작자는 말합니다. 직관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고요. 사람들이 글 자체를 안 읽으니 마케팅의 힘이랄 것도 이제는 없다고요. 콘텐츠 자체의 힘도 없어졌고 아무리 마케팅을 해봐야 효과도 나오지 않고, 신선한 마케팅이라는 것은 더 이상 없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미 있던 것을 반복’하면 즉각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요즘은 그 어떤 때보다 전파력이 강하잖아요. 순식간에 차트를 휩쓸고 모든 분야에 같은 내용이 유행하고 같은 모델이 보이는 것처럼 한 유행은 다른 분야로 범람합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직관적인 책은 다양하고 적극적인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으니 ‘있던 것의 강화’에 초점을 맞춥니다.
직관적인 책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콘텐츠 포화상태를 넘어 이제 마케팅까지 포화상태가 되어 손을 들어버린 게 아닌가 하고요. 이는 다양한 고민을 담고 고려하는 마음, 다양성과 건강한 차이점을 만드는 최후의 보루가 흔들리는 것이 아닐까요. 모든 분야에 한 가지 이슈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다양성은 줄어듭니다. 콘텐츠의 포기, 마케팅의 포기는 다시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칩니다. 지난 6월호에서도 ‘미디어 셀러’ 인기 현상이 책이 부가적인 상품이 되어버린 문제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출판계가 독립적인 힘을 길러야 한다는 이야기를 담았었는데요. 마찬가지로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독립적인 힘이 중요해 보입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모든 것이 포화인 시대인 것 같습니다. 같은 것이 너무 많으면 무언가 분별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분별하기에도 노력이 필요하니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다른 더 중요한 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각자의 기준을 만들고 좋은 책을 고르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게 책을 옆에 두어야만 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임무겠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 독자, 편집자, 마케터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포화상태처럼 보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우리가 고민하는 걸 멈추지 않으면 또 새로운 무언가가 앞으로도 수없이 저희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 않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문장으로 쇼트레터 14호(8월호)를 마무리합니다. 쇼트레터도 계속해서 새로운 생각과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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