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기후 변화, AI에 고물가, 경제 등 모든 게 불확실합니다. 묻지마 범죄도 많아졌고요. 이렇게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인데도, ‘미래의 나’, ‘퓨쳐’ 키워드가 인기이고, 재테크와 투자에 관한 책도 계속해서 출간되고 있습니다. 미리 노화를 관리하는 ‘얼리 안티에이징’이라는 말도 생길 만큼 눈, 피부, 모발 등의 건강에 관심도 늘어났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더 멀리 보고, 미래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죠. 지난해 나온 『대학내일 Z세대 트렌드 2023』를 보면,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사람들의 태도가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2010년대는 장기 불황의 시대였다. ... 열심히 스펙을 쌓고 돈을 모으면 직업도 집도 가질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오늘의 노력이 미래의 안녕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_112.p (욜로의 시대에서 갓생의 시대로)
그래서 이때(2010년대)를 ‘욜로의 시대’라고 말하는데요. 즉각적, 일시적인 만족을 추구하고, ‘탕진잼’을 즐기고, ‘홧김소비’를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이는 2020년대 초반 ‘플렉스’라는 말로 이어졌습니다.
이후에는 코로나가 터져 이마저도 담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과거와 달리 “일시적이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무탈한 하루를 유지할 힘을 기르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에서는 이를 ‘갓생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과거의 욜로나 지금의 갓생 모두 나와 현재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욜로를 지향하는 삶에서 현재가 ‘후회 없이 즐겨야 하는 순간’이라면 갓생의 현재는 ‘좋은 습관을 쌓아가는 과정’으로 둘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 지금은 소비의 가치를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체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엇이 내 삶을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주는지, 그것이 얼마나 오래가는지에 따라 만족감이 달라진다. 한마디로 현생을 더 잘살기 위해 지속가능한 관점에서 자신에게 투자하는 소비가 바로 요즘 세대의 소비 트렌드다. ··· 탕진하고 비우는 소비가 아닌 이어지고 채워지는 소비를 지향한다.” 『대학내일 Z세대 트렌드 2023』 115-116.pp
불확실한 미래에, 코로나까지 터졌는데 사람들은 왜 갓생을 살게 된 걸까요?
모두 코로나가 오래 갈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1년, 2년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도 한몫했을 것 같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백신 개발 등으로 ‘참아야 하는 기간’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기다림이었다면 계속 ‘탕진잼’으로 불확실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코로나 동안 힘을 응축하고 있던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했지만 코로나가 어쩐지 그 맥락을 끊고 새로운 시대가 온 것 같은 느낌, ‘다시 주어진 기회’의 감정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팬데믹 이후, 지금
팬데믹이 끝나고 보복소비, 보복여행 등의 말도 많이 나오지만 과거처럼 조절 없는 ‘탕진’소비를 하기보다는 다시 잘 살아보고, 미래에 어떤 고난이 와도 버틸 수 있도록 잘 대비하려는 마음이 지금의 서점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코로나 기간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짐’과 ‘각오’ 등을 해온 게 아닐까요.
코로나는 끝났지만 여느 때보다 더 불확실해 보이는 미래 앞에서 그것이 통제 가능하다고 말하는 책을 쉽게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미래의 나, 삶과 죽음,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달콤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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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트렌드를 보면서 ‘앞서가는 책’에 대한 생각이 많았습니다. 최근 쇼트레터의 내용이 책이 뒤처지고, 이슈를 복제하고, 대안이나 부수적인 것이 되어간다는 우려가 대부분이었는데요. 거기에 나름 제가 정의한 좋은 책의 기준도 ‘세상을 담아내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이 ‘지금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를 담은 책이었으니까요. ‘앞서가는 책’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번 책들이 어쩐지 독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원하고 있던 말들을 먼저 담아낸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 사회의 모습에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하고요. 다만 쇼트레터는 이번에도 요즘 책들이 말하는 기준을 보며 ‘이렇게 살지 않으면 행복해지지 못할 거야’라는 또 다른 강박이 독자분들에게 퍼지지는 않을까 우려되고, 경계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책들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을 테지만 언제나 책을 삶의 구조대로 삼는 저 같은 독자에게 이런 강박은 쉽게 생기고 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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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가 반드시 필요해. ··· 어라 그렇다면... 행복해지고 싶다는 바람을 가질 때. 바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행복하지 않은 현실이 바로 눈앞에 마련되어버리는...” 『악마와의 수다』 89.p
우리 '사회 전체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현재 책들은 ‘미래를 전체를 바꾼다’ 보다는 미래의 ‘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나’를 바꾸면 그 ‘나’들이 모여 사회를 바꿀 수 있겠지만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바꿀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자조적인 메시지를 흡수하는 트렌드는 과거보다 더 나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으니까요. 아직 『트렌드 코리아 2024』도 나오기 전이고, 미래와 관련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니 이번 트렌드에 또 다른 비밀이 숨어있을 것도 같습니다. 앞으로 나올 책들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특히나 궁금해지는 이번 주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