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제 방 벽에 붙어있는 걸 찍은 겁니다. 도서전에서 받아온 엽서인데, 매일 아침 옷을 입을 때마다 눈에 들어와요. 나갈 준비를 하긴 하지만 내가 지금 뭘 하러 가는 건지, 열심히 하면 뭐가 되긴 하는 건지 혼란스러울 때 이걸 보고 나면 머릿속이 단번에 정리가 됩니다. 나눠 먹을 팥빙수 같은 것들이 내게도 많다고, 그래서 나는 가난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요. 마치 부자의 서민 체험 마인드가 된다고 할까요.
매일 이 문장을 보아야만 생각 정리가 되는 저와는 달리, 강태풍의 성격은 타고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그의 신념에 힘을 실어주는 사람은 있었죠.
“니 앞으로도 니 쪼대로 살아래이, 돈도 없고 뭣도 없어도 옆에 사람 있으면 된다. 지 아무리 뭐 이 세상이 변한다 케도 그 세상 살아가는 기 사람이라는 거는 똑같다 아이가.”
사람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처음으로 전면에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드라마가 자본주의와 휴머니즘을 섞는 방식은 여러가지입니다.
헬멧과 안전화, 나를 믿어주는 이들
9화에서 강태풍은 친구 윤성과 오랜만에 만납니다. 태풍은 과거에 집이 망해 도망 다니는 윤성에게 지갑에 있던 돈과 시계 등을 전부 쥐어줬었죠. 재회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선물을 하나씩 건넵니다. 헬멧과 안전화. 안전화는 태풍의 사업 아이템이었고 헬멧은 윤성이 공장에 취직해 만들고 있는 상품이었습니다. 후에 헬멧도 태풍의 사업 아이템이 되는데요. 돈벌이의 수단이지만 두 가지 모두 사람의 안전을 생각해 탄생한 것입니다. 윤성은 선물을 주면서 ‘뭘 하든 다치지 말라’는 말을 하고요.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건넨 선물 속에는 돈이 들어있었습니다. 97년도, 가진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서로에게 주는 게 더 많았던 시기. 이렇게 나눈 정이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었을 겁니다. ‘계속 살아서 당신에게 진 빚을 갚겠다’, ‘내가 열심히 성장해서 당신의 힘듦을 덜어주겠다’ 하고요. 이 장면에서 나온 돈이 제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돈이었습니다.
아무리 태풍이 강한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고 해도 회사는 그것만으로는 굴러갈 수 없죠. 이때 태풍의 진심을 알아주는 직원들, 그것도 자신만의 ‘능력’을 가진 직원들이 하나둘 복귀하는데요. 복귀의 시기는 역경-해결의 시기입니다. 역경은 드라마의 필수 요소인데, 어떤 드라마는 역경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전략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해쳐나가고, 로맨스 장르는 주로 좋아하는 상대가 나타나 구해주잖아요. <태풍상사>는 사람을 흩어지게 했다가 다시 모으는 방식을 쓰고, 그러면서 메인 메시지를 강화합니다. 내가 갖지 못한 능력을 더해,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사람이라서 중요하다는 거죠.
가장 중요한 건 당신
마지막으로 로맨스를 보여줄 때도 메시지는 흐려지지 않습니다. 먼저 미선(오주임)을 향한 태풍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그때 남모도 나에게 물었었다. 너는 뭐가 제일 소중한데? 누군가가 나에게 다시 묻는다면, 가장 소중한 건 바로 너.”
미선도 사실 마음이 있지만 멋진 상사맨이 되겠다는 꿈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 미선도 13화에서 죽음의 위기를 맞자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난 간절했던 나의 꿈보다 먼저 떠오르는 후회들이 있다. 할머니한테 인사하고 올걸, 미호한테 백화점 그만두라고 할걸, 범이 속옷 미리 사놓을걸. 하지만 제일 후회되는 건, 말이나 해볼걸. 내 마음 알려줄걸. 좋아한다고. 이 눈빛을, 당신의 모든 걸, 좋아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