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연휴가 지난 뒤 바쁜 3주를 보냈습니다. 지난 호 마무리에서 30호를 제대로 써보겠다고 해놓고서 10월 말의 저는 또다시 핑곗거리만 잔뜩 떠올려보았고요. 어림없는 시도라고 또 다른 저에게 혼나고, 얌전히 노트북을 켰습니다. 그래도 영 할 말이 없지는 않을 것 같아요. 연휴 동안 구병모 작가님의 신작 《절창》을 (희열 속에서) 읽었고, 30호를 준비하면서 최근 것부터 다섯 개의 호를 다시 읽어봤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디어 개츠비》라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편집자로 꼽히는 맥스웰 퍼킨스와 그가 담당했던 작가인 F. 스콧 피츠제럴드가 나눈 편지를 묶은 서한집을 읽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들과 제 머릿속의 없는 살림을 모아 이번 호를 적어낼 겁니다. 늘 하던 것처럼요.
《절창》은 이야기를 읽는 쾌락을 오랜만에 만끽하게 해준 소설이었습니다. 그걸 느끼게 해준 큰 줄기의 스토리를 빼고서도, (26호에서는 조금 헷갈려 했던) 독서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고요. 무용함부터 오역으로 인한 왜곡 및 훼손,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읽어내며 받는 스트레스 등 독서의 모든 단점을 정확히 인지하고도 주인공은 책을 향한 믿음을 버리지 않거든요.
“말하기와 듣기, 쓰기와 읽기란 비록 그것으로 인해 변하는 실재가 없음을 물론 그것이 거쳐가는 길이 모순의 흙과 불화의 초목으로 닦이고 마침내 도달하는 자리에 결핍과 공허만 남아 영원한 교착상태를 이룬다 한들, 그 행위가 한때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의 영혼이 완전히 부서져버리지 않도록 거드는 법입니다. 언어의 본질과 역할을 두고 명멸하는 무수한 스펙트럼 가운데 그것만큼 괜찮은 구실이 또 있는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_41쪽
《디어 개츠비》의 맥스웰 퍼킨스는 토머스 울프라는 또 한 명의 위대한 작가를 키워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지니어스>죠. 글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겪는 편집자의 딜레마를 담고 있어서 와닿기도 했지만, 이야기의 근원, 발생 목적을 알려 준 대사가 있어 특별하게 남은 영화입니다.
“선사시대를 떠올려 봐. 우리 선조들은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앉았을 거야. 불빛 너머 어둠 속에서 늑대들이 울부짖었겠지. 누군가 입을 열었을 테고, 이야기를 들려줬을 거야. 그렇게 두려움을 몰아내지 않았을까?”
이야기는 무용하나, 그건 우리가 인지했을 때고, 모르는 사이 하루를 또는 며칠을 더 살 수 있게 했을 겁니다. 이렇게 책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속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저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게 했고요. 그래서 쇼트레터는 그런 이야기들로 잔뜩 채워져 있습니다. 재인용과 복제의 늪에서 여전히 허우적대는 건 별개로 문제이지만요. 한 달에 한 번 발행한 레터가 30개, 중간에 휴재한 약 1년을 합쳐 3.5년 정도의 시간. 좋은 작품을 오역, 왜곡, 훼손했다는 두려움을 또 다른 이야기로 덮으며 이어왔습니다.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자신의 모든 지식을 동원하는 일이고, 그걸 다시 설명해야 하니 정돈하고 정리하면서 저도 모르게 제 안에 가치관이라는 게 세워졌을 겁니다. 그걸 가장 많이 담아낸 공간이 레터였으니 어떤 면에서 여기는 제 자아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하고요. 그러니 글의 목표나 목적이 바뀔 때 저도 바뀌었고, 현실의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소개해 드린 적은 없으나 어떤 감정이 강한 호는 현실의 저도 그에 응당한 일을 겪고 있었을 겁니다. 그걸 많이 드러내지 않으려고 줄인 말도 많아요.
돈, 명예, 체면, 두려움, 죄책감, 외로움, 추움, 기쁨, 희열, 쾌락, 중독, 의지, 응원, 좌절, 종말, 죽음, 생존 다양한 주제 속에서 여전히 몇 가지는 믿음으로 남아있기도 하고, 여전히 흔들리는 것들도 있습니다. 특히 그중 지난 호에 소개한 《반쪼가리 자작》과 《싯다르타》는 제 삶의 궤도를 유지해 주고 있고요.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지나치게 들이대면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계속 파고들게 되고, 때로 그게 두려움이라는 살인 무기가 되어 돌아온다는 점. 게다가 선함이란 인간의 특징을 일부만 읽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제는 압니다.
“그저 하나의 식물처럼 도덕적인 이야기에 생동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_《디어 개츠비》, 마음산책, 71쪽
그리고 부정, 두려움과 공존하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을 천천히 배워가고 있죠. 또 무언가를 단단히 믿거나 믿지 않음으로써 얻는 안정을 요즘은 종종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권의 책을 펼칠 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세상의 코어를 이루는 것이 반드시 희망 내지 사랑만은 아니며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인간들과 혹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나 자신과 필연적으로 상족하거나 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자 태초부터 운명지어진 비극이라는 사실이지. 그리고 그 비극을 견디는 게 인생의 거의 전부야.”_《절창》, 문학동네, 302쪽
다행히도 30호를 쓰는 지금, 최근 몇 년 이어진 방황의 시기를 지나 위치도, 정신도, 주변인들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안정 상태에 가깝습니다. (지금이 더 나은 어른이라고 가정하고) 지나온 길을 회고하는 시간에 이런 상태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많이 흔들렸던 그 시간들이 아깝지 않게 손에 남은 깨달음들만 생각해 보면, 삶은 소중하다는 것과 두려움은 나를 파괴한다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나를 살게 하는 엄청난 존재라는 것, 또 나쁜 사람은 정말 한없이 나쁠 수도 있다는 것, 긴장을 너무 하거나 너무 풀면 나 또한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등입니다. 별거 없죠? 겪어보기 전까지 의미 없이 텅 비어 있던 이 문장들을 몸으로 배워 채우기 위해 사람에게 생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몸으로 직접 또 그 험악한 롤러코스터를 타보라고 하면 그러고 싶진 않습니다. 대신 할 말은 있어야 하니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저를 초점 맞춰 써버렸네요.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게 더 커야 할 텐데요. 다만 지금까지 내내 어떤 글을 전해야 여러분이 더 편안해질까, 더 건강해질까 그 고민을 많이 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제를 좁히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 제 머리를 또 깨지 않는 한 당분간은 긍정의 글을 쓸 겁니다. 세상은 이미 우리에게 감당 못 할 정도로 많은 경고를 보내고 있으니까요. 거들고 싶지 않을 만큼요.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단단한 현실을 만드는 것을 돕는 글을 쓰고 싶어요. 원대하죠. 그런 다음 호를 또 궁금해 해 주신다면, 쌀쌀한 날씨에 맞서 만든 근육을 가지고 다음 호에 다시 뵙겠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