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나오는 빌런 조부 투바키의 본체는 조이라는 여자아이입니다. 조이가 세상을 뒤흔들기로 결정해버린 이유와 홀든이 세상 살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같아 보입니다. 모든 게 다 안타깝고 슬프고 혼란스러워서요.
“어느 날 심심해서 어느 베이글 위에 모든 걸 올렸지. 모든 걸. 내 모든 꿈과 희망, 옛날 성적표, 개의 모든 품종, 인터넷 구애 광고, 참깨, 양귀비씨, 소금. 그랬더니 알아서 붕괴하더라고. 세상 모든 걸 베이글 위에 올리면 이게 되거든, 진실.”
“기분 좋지 않아? 다 부질없는 거면.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괴로움과 죄책감이 다 사라지잖아.”
조이와 홀든이 혼란에 잠식된 이유는 바로 ‘초 공감자(hyperempath)’였기 때문입니다. 초 공감자라는 건 조이 역의 스테파니 수가 캐릭터를 잡을 때 참고한 개념으로, 옥타비아 버틀러의 책에서 나오는 표현입니다. 왜 누군가는 차별받고 고통받는지, 세상은 대체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 본능적으로 느끼고 늘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칭하고요.
“이게 진짜 문제다. 멋지고 평화로운 곳은 찾을 수가 없다. 그런 곳은 없기 때문에.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단 거기 가 보면, 사람이 보고 있지 않을 때 누가 몰래 가서 바로 코앞에서 ‘FUCK YOU’라고 적어 놓는다.”_303쪽
“백만 년 동안 지우고 다녀도 세상의 ‘FUCK YOU’를 반도 지우지 못할 거다. 불가능한 일이다.”_301쪽
단순히 느끼는 데서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해결하고 싶은 본능도 따라오거든요. 그러니 더 고통스럽지 않겠습니까. 인류애를 잃어버린 가식의 세계가 못 견디게 싫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는 자신을 어떻게든 데리고 살려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합니다. 그렇게 홀든은 호감이 있는 여자애 샐리에게 함께 먼 곳으로 떠나자고 제안하는데요. 곧 자신과 생각이 다름을 알고 포기합니다.
이 또한 정답이 아니다
방황의 시간이 이어지고 홀든은 점점 더 고립됩니다. 돈도 없고 잘 곳도 없는 홀든은 그동안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해온 안톨리니 선생님한테 연락해 도움을 청합니다. 우리가 언뜻 보기에도 그는 좋은 사람 같습니다. 늦은 시간 전화한 홀든을 친절하게 집에 초대하고, 이런저런 사려 깊은 조언을 해주고, 제임스 캐슬이라는 친구가 건물에서 떨어졌을 때도 가까이 갔던 유일한 사람이었거든요.
“···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 행동에 혼란을 느끼고 겁을 먹고 심지어 그걸 역겨워한 사람이 네가 처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_283쪽
안톨리니 선생님은 빌헬름 슈테켈이라는 정신 분석가의 말까지 인용하며 열심히 조언을 건네지만, 책은 그가 이야기하는 삶의 교훈과 진리들을 독자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게 싫었던 모양입니다. 홀든은 안톨리니가 말할 때 점점 졸음을 느끼고 마지막에는 하품마저 해버리거든요. 게다가 안톨리니는 홀든이 잠들었을 때 머리를 쓰다듬는, ‘변태적인’ 행동을 하죠. 그가 하는 말이 절대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이요.
보잘것없고 소중한 이유
그럼 대체 홀든을 어떻게 이 세계에 발붙여놓을 수 있을까요.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두고, 지키고 싶어 하는 대상은 다 어린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