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소설 《욕조가 놓인 방》 개정판 서문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연애소설이 곧 사람들의 마음 안쪽을 들여다보는 소설이 아닌가. 연애 서사만큼 삶의 비합리성과 불가피함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인 것이 있던가.”_(4쪽, 작가정신, 2021)
우리가 보는 모든 연애 관련 작품에는 이런 효과가 숨어있습니다. 삶의 비합리성과 불가피함에 대한 탐구. 인문학이나 철학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죠. 주변에 너무 산재되어 있어 등한시했지만 도파민을 채우거나 스트레스 풀이용으로만 쓰기에 연애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생각보다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잘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도요.
그러니 우리는 사랑 전문가인 이승우의 관점을 더 배워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사랑 세계관은 큰 전제가 있는데요. 사랑에 자아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생체이자 주인공이고, 사람은 숙주라는 것이죠. 이렇게 정의하면 사람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사랑에 놀아나고 있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일에서 벗어나 해야 할 일은, 사랑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느냐를 탐구하는 겁니다.
“제인 오스틴, 프랑수아즈사강, 그리고 샐리루니에 이르기까지, 연애소설이 실패를 그리는 전통적인 방식은 사랑할 때 발생하는 섬세한 감각의 변화를 현미경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 반대편에 이승우식 연애소설이 있다. ··· 이승우는 묘사하지 않고 진술한다. 심문하고 색출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심문과정은 한층 더 차갑고 치밀해진다.”_(127쪽, 개정판 작품 해설, ‘사랑은 물이 되는 꿈’, 박혜진)
더 나은 상대가 누구인지 평가하거나 이미 있는 정답에 각각의 사랑을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해보는 거죠. “차갑고 치밀”하게요. 누군가 못되보이는 행동을 했다면, 사랑이 왜 이런 일을 하게 했는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정의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숙주인 인간은 어떤 상태여야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고, 키워낼 수 있고, 어떤 상태면 사랑이 금방 사라지는지, 소설 《욕조가 놓인 방》은 하나의 예시를 내놓습니다.
이 소설은 물속에서 살고 싶은 여자와 물 위를 걷고 싶어 하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존재하길 원하는 공간이 달라 둘은 금방 헤어지죠. 사랑이 자신의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남자가 내면을 비워내지 못했기 때문도 있고요. 명분이 있어야만 움직이며 생각이 너무 많은 이 존재에게 사랑은 오래 기생하지 않습니다.
남자는 정여울의 해설 속에서, ‘현대인’과 ‘문명인’이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모든 게 합당한 명분으로 돌아가는 이들에게 상대의 상처와 비밀은 너무 무겁고 합리적이지 못하죠. 내면을 타인의 믿음으로 가득 채워 오히려 모든 걸 잃어버리는 이들(<지옥>, <이재 곧 죽습니다>)에 대한 이야기를 지난 27호에서 했는데, 그 모습과 겹치기도 합니다. 27호는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야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책 《에로스의 종말》을 인용하며 끝맺었습니다. 그리고 《욕조가 놓인 방》도 비슷한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와호장룡>의 사랑은 상대방의 매력을 소비하거나 상대방에게 인정받기 위한 사랑이 아니라 ‘나’를 ‘나’이게 하는 경계조차 허물어버리는, 탈아의 사랑이다. 내가 나인 것을 벗어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이 끔찍한 문명인의 사랑법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아닐까.”_(175쪽, 초판 작품 해설, ‘문명화된 아담과 신비화된 이브, 그 비극적 마주침’)
이렇게 여러 작품 속에 나오는 사랑에 대한 정의들은, 사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사랑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고민한 끝에 얻어낸 결과일 겁니다.
‘현대인의 사랑’에 대한 반성 필요성은 이제 배웠지만, 사랑의 모양은 아주 다양하고 이대로 끝내긴 아쉬우니 미성숙한 사랑을 변명해줄 수 있는 작품 하나를 더 보겠습니다. 주로 우리의 미움 타겟이 되는 사랑의 형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