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비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작가의 신작 《탕비실》의 뒤표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누가 가장 싫습니까?”
간단한 질문이지만 나열된 보기를 다 읽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호불호를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질문이거든요. 이 책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대부분 싫지만 누가 가장 싫은지, 왜 싫은지 자연스레 질문이 붙고 이유를 떠올리게 되죠. 싫은 이유의 타당성을 따져보게 하는 질문입니다.
《탕비실》의 소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입니다. 현실에서는 인기가 많지만 소설에서는 잘 본 적 없던 소재죠. 일반인 출연자들과 마련된 공간, 합숙과 규칙. 책 제목인 ‘탕비실’은 해당 조건에서 일종의 마피아 게임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출연자들에게 탕비실 빌런이 아닌 사람(마피아)을 찾으라는 미션이 주어집니다. 주인공인 ‘나’는 마피아가 아니고, 고로 탕비실 빌런입니다. 회사 동료들의 추천을 받아 프로그램에 섭외되었죠. 어쨌든 마피아를 찾으면 상금을 주니 ‘나’를 비롯한 탕비실 빌런들은 마피아를 추리하기 시작합니다.
마피아를 찾기 위해서는 상대가 연기를 하는지 아닌지 알아내야 하고, 따라서 대상들을 꼼꼼히 관찰해야 합니다. 이런 유도가,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만 쉽게 판단했던 타인들을 달리 보게 합니다. ‘탕비실’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일종의 교훈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고요.
“나는 그날 그녀가 싫어졌다. 그러나 술래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그녀에 대해 더 알아내야만 했다. 나는 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을 더 알아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건 쉽지만 정말로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건 어렵다. 나는 이 게임이 단순히 탕비실에서 열리는 진상 콘테스트가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_77쪽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지독하게 현실적인 책들은 하나의 길로만 안내하지 않습니다. ‘탕비실’ 프로그램이 주는 교훈만 생각하면 훌륭하지만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의 의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음침하기 짝이 없고요. 책을 읽은 독자분들도, 이 이야기에서 너만 홀가분히 청렴결백해진 채 빠져나갈 수 없다는 듯 불쾌하고 메스꺼운 감정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달라붙는 걸 느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인물들의 음침한 심리가 제 안에도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았거든요. 그래도 담백하게 묘사된 익숙한 감정을 떠나 심연의 감정을 들여다 볼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무언가를 반성하고 순응하는 과정, 또는 불안에 시달리다 합리화를 고르는 과정. 인지하지 못했던 자신의 문제점을 마주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기보다 ‘내가 싫어하는 저 사람들과 같아질 순 없어’라며 재빨리 교정에 기대를 거는 모습. 그러면서 ‘내 문제는 크지 않으며 쉽게 교정될 것’이라 생각하는 특별함과 이기심 등.
“누가 가장 싫은지”에 답하기 위해 빌런들의 행동을 살피며 신중하게 혐오를 키우던 독자들은 책의 후반부에 가면 어느 정도의 합의점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깨닫는 듯 깨닫지 못하는 모든 인물에서 문득문득 내가 보이거든요. 나를 미워할 수 없으니, 조금씩 나를 닮은 그들도 전처럼 아주 미워할 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