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까지 제어하는 《어른의 어휘력》
앞의 두 단어를 비교했으니 아시겠지만 어휘력은 앞서 본 두 가지 이슈와는 조금 다릅니다. 문해력과 문장력은 ‘글’, 《어른의 어휘력》이라는 책은 ‘말’의 능력을 기르는 거죠. 하지만 ‘책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든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하니, 서로 다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어휘력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고민하고 수정할 수 있는 글과는 달리 말은 그때그때 분위기와 순간의 감정들까지 영향을 받아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됩니다. 이미 문해력과 문장력으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이해하신 분들은《어른의 어휘력》이라는 책에서 분위기에 맞게,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 표정을 읽어내며 ‘말’을 잘하는 법에 초점을 맞춰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주 예전이지만, 삼시옷 계정에 올라왔던 어크로스 출판사의 《인터넷 때문에》 리뷰에서 언어 이슈를 잠깐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언어 이슈에서 책들은 늘 ‘누구도 틀리지 않고 서로 다를 뿐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습니다. 그럼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언어로 얘기하면 될 텐데 왜 이런 책들이 나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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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한계를 인정하고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정확하게 표현하려 애쓰고 질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원활한 소통, 원만한 인간관계, 탁월한 성과는 모두 내 생각은 어른의 문장으로 정리하려는 수고에서 시작한다. 《어른의 문장력》p.21
《어른의 문장력》에 나오는 문장인데요. ‘다르니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기만 하는 것은 누구의 변화도 필요 없지만, 언어의 세계에서는 이 명제를 적용할 수 없습니다. 언어의 가장 큰 기능은 서로 소통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서로의 존재를 배제하는 순간 언어의 기능은 쓸모없어지지 않을까요?
언어에서는 통하지 않는 '다름'
이 둘의 공통점은 ‘글’이라는 것 말고도 다른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죠.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문장력, 문해력의 ‘력’은 노력이라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 애초에 문해력과 문장력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관련된 이슈들은 서로를 무시하면서 떠올랐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에게 이 능력들이 있다고 얘기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조금 모르고, 잘못 말한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요. 앞서 본 책들이 세상에 나온 이유도, 이 책들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정확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시당하지 말라고’, ‘더 알아서 무시하라고’가 아니라 남을 위해 노력하는 마음을 돕기 위해서 만들어진 책이니까요.
우리는 규칙을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문어로 어조를 전달하는 방법을 익힐 때에야 글이란 지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의 목소리를 더 잘 듣는 방식임을 알게 된다.
《인터넷 때문에》, 그레천 매컬러 _p. 305 |